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용석)은 최근 학술총서 17〈100년 전 선교사, 서울을 기록하다〉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매년 해외에서는 무관심 속에 사라지거나 잊혀지고, 국내에서는 자료 접근의 어려움으로 인해 잘 알려지지 않은 미공개 서울학자료를 발굴하고 조사한 성과를 학술총서로 발간하고 있다. 학술총서 발간 사업은 서울학자료의 중요성을 알리고, 시민과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미국 드류대학교 도서관을 비롯하여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 LOC), 국립문서기록관리청(The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 등에 소장된 총 5,400여 건의 서울사진을 조사하였다.
이번에 발간된 학술총서 17〈100년 전 선교사, 서울을 기록하다〉는 서울역사박물관이 2020년부터 시작한 미국 소재 서울학자료 조사의 첫 결실로 뉴저지주 드류대학교(Drew University) 도서관에 소장된 미국 연합감리교회 아카이브(General Commission on Archives and History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GCAH)의 약 3,200건의 서울사진 중 사료적 가치가 높은 180건을 엄선하여 선보였다.
또한 사진과 함께 조선 말기~일제강점기 신문, 상업사자료, 역사자료, 지적도 등 철저한 문헌 조사와 검증을 통해 자세한 국・영문 해제를 더하였다. 그간 국내에 소개되었던 미국 내 근대 사진자료가 충분한 분석과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아 세부 사항을 파악할 수 없었던 것과 달리 사료적 가치를 높였다.
미국 연합감리교회 아카이브는 미국 감리교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건너와 사역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로 국내에 간헐적이고 단편적인 학계 소개나 충남 등 다른 지역의 사진들이 소개된 바 있었지만, 서울사진이 대대적으로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감리교 선교사들의 사진은 당시 조선총독부와 일본인이 촬영한 사진에 나타나는 식민주의적인 정치 의도와는 달리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서의 서울풍경과 생활상을 기록한 희귀자료가 많아 서울학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주제는 ‘서울거리 풍경’, ‘한양도성과 궁궐’, ‘학교’, ‘병원과 의학교’, ‘교회’, ‘일상 생활’ 등 총 6개로 분류되었다. 특히, 같은 장소의 사진이 시간차를 두고 연속적으로 촬영된 것이 있어 시간의 추이에 따른 서울의 변화상을 비교할 수 있는 점이 흥미롭다.
제1장 ‘서울거리 풍경’은 종로(鐘路), 남대문통(南大門通), 태평통(太平通), 광화문통(光化門通), 서대문정(西大門町), 의주통(義州通), 본정(本町), 황금정(黃金町), 욱정(旭町), 정동(貞洞) 등 서울 곳곳의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조선총독부가 대한제국기 고종(高宗)이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단이었던 환구단(圜丘壇)을 철거하고 세운 조선철도호텔(1914년 준공)의 건축 장면과 현재 서울도서관 자리인 경성일보사(京城日報社) 사진은 1914년부터 1915년 이후까지 건축에서부터 준공, 화재 발생으로 이어지는 서사적 구성을 가지고 있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조선철도호텔(현재 웨스틴조선호텔) 사진은 외부 공사를 위한 목재들이 층층이 세워져 있고, 그 앞으로 환구단의 돌담과 정문(正門)으로 추정되는 문의 일부가 담겨 있다. 조선철도호텔은 일제가 시정5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1915) 개최를 위해 건립한 조선총독부 철도국 직영 호텔이다.(사진 2)
공진회를 기점으로 조선과 만주 등 철도 여행이 발달하면서 조선철도호텔 사진은 조선풍경, 경성백경(京城百景) 사진엽서나 관광안내서에 준공 이후의 사진은 많이 알려져 있으나, 공사 중 사진은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또한 원 위치가 소공동 방향이었던 정문과 돌담이 보여 향후 환구단 고증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서울도서관이 된 경성부청(京城府廳)이 1923년 12월 신축 이전되기 전 그 자리에 있었던 경성일보사는 1914년 10월에 준공된 후, 다음해인 1915년 11월에 발생한 화재로 중앙의 첨탑이 소실되었다. 그러므로 ‘건축 중 → 준공 후 → 화재 발생 후’로 연결되는 경성일보사에 대한 일련의 사진은 경성일보사의 시간 배열을 가능하게 해준다.(사진 3,4,5)
이밖에 우리에게 익숙한 종로, 남대문통, 태평통, 광화문통, 서대문정, 의주통, 본정, 황금정, 욱정, 정동의 새로운 거리 풍경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1911년 건립된 식민국책회사 동양척식주식회사 옆 공터에서 아이들이 연날리기를 하고 있는 황금정 2정목(현재 을지로 2가)(사진 6)
동쪽을 향한 경희궁(慶熙宮) 흥화문(興化門)이 1915년 도로 확장으로 남쪽으로 이전되기 전의 서대문정 1정목(현재 새문안로 1가)(사진 7)
조선총독부 전매품인 담배를 생산하던 동아연초주식회사(東亞煙草株式會社) 공장과 소년공들이 해맑게 웃고 있는 종로 4정목(현재 종로 4가)(사진 8,9)
제2장 ‘한양도성과 궁궐’은 지금은 멸실되어 보기 힘든 한양도성과 사대문(四大門), 사소문(四小門)의 변화와 특징, 경복궁(景福宮), 경희궁, 덕수궁(德壽宮), 운현궁(雲峴宮) 등이 피사체로 등장한다.
숭례문(崇禮門) 사진은 1898년 전차가 운행되고 1907년 일본 요시히토 황태자(훗날 다이쇼천황)가 조선을 방문할 때 북쪽 성벽이 철거되기 전 사진, 1908년 좌우 성벽이 모두 훼철된 1910년대 숭례문, 1921년 경찰초소가 들어선 1920년대 사진, 남산구간으로 이어지는 성벽 사진 등이 소개되었다. 특히 한 겨울 눈이 내린 숭례문 풍경을 1910년대와 1920년대로 시간을 달리하여 촬영된 사진은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을 준다.(사진 10,11,12)
한양도성 사소문 중 하나인 광희문(光熙門)은 상여가 도성 밖으로 나가는 문으로 시구문(屍口門)이라고도 불렸다. 상여와 장례 행렬이 나가는 광희문 사진은 시구문이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확인해 준다. 사진 속의 1913년 철거된 광희문 양쪽 성벽의 존재는 한양도성의 면모를 살피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사진 13)
우리나라 근대적 사방사업의 효시로 알려진 1907년 창의문(彰義門) 주변의 사방(砂防)사업 직후 모습과 10년 후의 수목이 형성된 모습은 당시 조림(造林)사업의 성과를 비교할 수 있다.(사진 14,15)
고종의 잠저(潛邸)이자 흥선대원군 이하응(興宣大院君 李昰應)의 사저(私邸)인 운현궁 양관(洋館)의 1910년대 후반~1920년대 초 사진은 2층 발코니에 지붕이 있는 노대(露臺)를 가지고 있다. 이 사진은 일부 학자들에게는 알려져 있었으나,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운현궁 양관의 변천과정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사진 16)
제3장은 ‘학교’로 제4장 ‘병원과 의학교’, 제5장 ‘교회’와 함께 근대 선교사들이 조선에서 펼쳤던 교육, 의료, 선교사업의 활동영역을 살펴 볼 수 있다. 조선에 도착한 선교사들은 발전된 서양의 의료사업과 교육사업을 펼치면서 효과적인 선교활동을 하였다.
소개된 학교로는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배재학당(培材學堂), 이화학당(梨花學堂), 배화학당(培花學堂), 경성외국인학교, 경신학교(敬信學校)를 비롯하여 조선기독교대학교(朝鮮基督敎大學校, 연세대학교 전신), 협성신학교(協成神學校, 감리교신학대학교 전신), 피어선기념성경학원(평택대학교 전신) 등의 신학교도 포함되어 있다.
선교사 설립학교 중 가장 유명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사진은 기존에 알려진 사진과 다른 구도를 가지거나, 실내 사진을 중심으로 선별되었다. 운동장에서의 야외 활동, 선교사 사택, 물리학 및 화학실험실, 기하학과 대수학 등 수업 장면, 부속 유치원의 점심시간 등 다양한 학교 활동을 보여 준다.(사진 17,18,19)
1925년 화재로 소실되기 전의 중명전(重明殿), 러시아공사관 등 정동 일대 풍경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어우러진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의 사진은 지금은 고층 빌딩이 들어서 볼 수 없는 서울 풍경을 시각적으로 재현해 준다.(사진 20)
조선기독교대학교(1917년 연희전문학교 인가)가 1917년 9월 현재 연세대학교 자리에 마련한 새 학교 부지와 경내에 있었던 수경원(綏慶園,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暎嬪 李氏)의 묘, 1970년 서오릉 이전)을 비롯하여 1920년대 준공된 스팀슨관, 언더우드관, 아펜젤러관 등이 건축되는 시간의 추이와 변화를 보여 준다.(사진 21)
일련의 협성신학교 사진들은 1910년 냉천동으로 이전한 협성신학교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한옥으로 시작하여 1915년 준공되는 서양식 건축인 갬블기념관이 건축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설명해 준다.(사진 22,23)
성경과 선교의 연합정신에 기반을 둔 피어선기념성경학원 본관과 기숙사 건축 사진은 서대문정 2정목(현재 새문안로 2가)에 있었던 신학교로 활발했던 선교와 교육 활동의 일면을 보여 주는 사진이다.(사진 24)
제4장 ‘병원과 의학교’는 한국 최초 근대적 여성전문병원인 보구여관(普救女館), 보구여관 분원인 볼드윈진료소(Baldwin Dispensery),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Lillian Harris Memorial Hospital), 제중원(濟衆院), 한국 최초의 현대식 종합병원이었던 세브란스병원과 세브란스의학교(전문학교) 등의 외부와 내부 진료실, 강의실, 실험실 사진들로 구성되었다. 이 사진들은 근대 의료선교의 일면과 한국에서 근대병원이 어떻게 변천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보구여관, 볼드윈진료소, 릴리안해리스병원 사진은 1887년 윌리엄 밴턴 스크랜튼(William Benton Scranton)이 이화학당 옆에 설립한 여성전문병원인 보구여관(1887)이 동대문 분소로 볼드윈진료소(1892)를 세우고, 이들이 다시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1912)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사진 25,26,27)
1904년 올리버 R. 에비슨(Oliver R. Avison)이 미국의 부호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Louis Henry Severance)로부터 기부를 받아 설립한 한국 최초의 현대식 종합병원인 세브란스병원 전경 사진은 북악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신축 직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사진 28)
1904년 준공된 세브란스병원과 1913년 신축된 세브란스의학교(1917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로 개칭), 외과‧안과‧이비인후과 병동과 각종 실험실 및 수술실 장면은 근대 의료 및 교육 선교의 현장 사진이다.(사진 29,30)
제5장은 ‘교회’로 상동교회(尙洞敎會), 종로교회(중앙교회 전신), 동대문교회, 광희문교회 등 서울 각처에 있었던 교회들을 비롯하여 옛 순화궁(順和宮) 터에 여성과 아동보건사업을 펼쳤던 복지재단인 태화여자관(泰和女子館) 사진 등이 있다.
정동교회와 더불어 대표적인 감리교회인 상동교회는 남미창정(南米倉町, 현재 남대문로)에 1888년 설립되었는데, 1901년 교인들의 헌금으로 서양식 예배당인 미드메모리얼회당(Mead Memorial Church)이 세워졌다.(사진 31)
1890년 아펜젤러가 세운 종로교회(현재 중앙교회) 사진은 한옥의 교회 전경을 담고 있으며, 1901년 시작한 유치원 교육으로 어린이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신도층을 확보하고 있었음을 알려 준다.(사진 32)
옛 순화궁 터에 세워진 태화여자관은 미국 남감리교 선교사 메리 마이어스(Marry D. Myers)가 1921년에 설립한 사회복지재단으로 여성 사회교육 및 영유아 보건사업을 중점적으로 펼쳤다.(사진 33)
또한 열렬한 감리교 신자로 알려진 박영효(朴泳孝)가 1916년 조선에 온 허버트 웰치(Herbert Welch) 감독을 위해 연 환영회 사진도 매우 흥미롭다. 사진 속의 장소는 그의 집과 별장이 있었던 ‘상춘원(常春園, 현재 종로구 숭인동 72번지 일대)’으로 추정되며, 웰치 감독과 박영효, 당시 배재학당 학당장이었던 신흥우(申興雨)를 비롯한 참석자들을 알려주는 희귀자료이다.(사진 34)
제6장은 서울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일상 생활’이다.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1900년대 초에 시작된 한국 야구 경기, 전차 안에서 표를 내는 모습, 국수를 말리고 물건을 흥정하는 모습, 간판 제작, 수돗가에서 물 긷는 모습, 한옥을 짓거나 수리하는 광경, 구두 수선공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촬영된 사진들은 100여 년 전 서울 사람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서양의 근대식 교육이 들어오면서 축구와 야구 등 근대 운동경기도 활발해졌다. 1905년 훈련원에서 치러진 황성 YMCA야구단과 한성중학교(漢城中學校, 현재 경기고등학교) 야구단의 경기사진은 근대 운동경기의 도입 및 보급 현황을 보여 준다.(사진 35)
근대기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에게 그림과 글자가 함께 구성된 간판과 자신의 몸집보다 몇 배가 큰 물건을 나르는 지게꾼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듯 간판을 제작하는 사람이나 오르간, 가구 등 무거운 짐을 진 지게꾼 사진은 선교사들의 호기심이 나타나 있다.(사진 36)
서울의 한 마을에서 대목장(大木匠)이 집을 짓고 돌담을 수리하는 사진은 20세기 전반 전통 민가의 건축 방식과 상황을 알려 준다.(사진 37)
일본종이를 생산하는 서울의 제지공장에서 나무판에 종이를 말리는 건조작업을 하고 있는 조선 여인의 사진은 마치 20세기 초 불안했던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이 투영된 듯하다.(사진 38)
이밖에 전차를 탄 승객과 검표원, 길게 뽑은 국수를 말리는 풍경, 고무굽을 바꾸고 있는 구두수선공 등은 근대화 과정의 변화하는 서울의 일상의 단면들이다.(사진 39,40)
또한 소개된 사진의 수집경위와 선교사들의 서울사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 논고 2편도 함께 수록되었다.
미국 드류대학교에 소장된 일제강점기 서울 사진자료의 입수경위와 소개(김인수, 대구교육대학교 교수)
근대 미국 감리교 선교사와 서울 사진(이유나, 서울대학교 강사)
서울역사박물관은 앞으로도 계속 해외에 소재하고 있어 무관심 속에 사라지거나 빛을 보지 못하는 서울학자료들을 발굴하여 가치를 부여하고, 역사적 의미를 찾아 시민과 공유하는 한편 세계와 소통하는 서울의 미래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 학술총서 17〈100년 전 선교사, 서울을 기록하다〉는 서울책방(store.seoul.go.kr)에서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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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조은뉴스 배명희 기자 ]